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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요약📌핵심 요약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구매담당자의 가치는 단순한 구매 데이터보다 공급망 운영 경험과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드러납니다. ERP에 기록되지 않는 공급사 선정 이유, 납기 특성, 수급 대응 이력 등 ‘공급망의 기억’이 인수 이후 생산 연속성과 공급망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를 실제 사례로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
기업 인수합병(M&A) · 구매담당자 · 공급망 관리(SCM) · 공급망 안정성 · 협력사 관리 · ERP · 구매 데이터 · 공급망 지식 · 구매 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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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구매담당자의 가치는 단순한 구매 데이터보다 공급망 운영 경험과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드러납니다. ERP에 기록되지 않는 공급사 선정 이유, 납기 특성, 수급 대응 이력 등 ‘공급망의 기억’이 인수 이후 생산 연속성과 공급망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를 실제 사례로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 기업 인수합병(M&A) · 구매담당자 · 공급망 관리(SCM) · 공급망 안정성 · 협력사 관리 · ERP · 구매 데이터 · 공급망 지식 · 구매 직무 |
과거 회사에 M&A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에서 우리 회사를 인수하려고 한다더라’, ‘얼마 전에는 외부 사람들이 공장을 둘러보고 갔다더라’, ‘최근 회사에서 평소에 요구하지 않던 자료를 갑자기 취합하고 있다더라’와 같은 소문들이었죠. 출처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런 소문은 출처가 불분명할수록 내용이 구체적이었습니다.
사무실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회사가 더 큰 곳에 인수되면 지금보다 복지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인수가 되면 구조조정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출근해서 똑같은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만으로 사무실 전체가 어딘가 붕 떠있는 듯했습니다.
M&A라는 단어는 뭔가 거창하게 들립니다. 기업가치가 얼마인지, 어떤 조건으로 지분을 인수하는지, 인수 이후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 인지와 같은 느낌이 들죠.
하지만 피인수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에게 M&A는 원초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1. 200명 중 11명
당시 본사에는 약 2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M&A 검토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인수 이후의 인력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공장 인력 상당 부분은 고용 승계를 하되, 본사 조직을 인수하는 회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능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극히 일부 인원만 승계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숫자가 11명이었습니다.
약 200명이 근무하던 본사에서 11명만 남는다고 했으니, 단순히 비율로만 계산해도 6%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때 회사의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였던 것은 그 11명 가운데 구매담당자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구매팀은 저를 포함해 모두 4명이었습니다. 본사 전체로 보면 200명 가운데 11명만 승계하는 안이었는데, 구매팀만 놓고 보면 4명 가운데 절반인 2명을 데려가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인수가 확정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것을 두고 기뻐하기도 참 애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승계 대상이라는 사실보다 함께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승계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먼저 보였고, 그런 상황에서 혼자 안도감을 드러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왜 하필 구매팀일까?”
인수를 검토하는 회사는 당연히 자체적인 구매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규모나 시스템 면에서 훨씬 체계적인 구매조직을 운영하고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두 회사가 구매하던 원료나 포장재의 물량을 합치고 기존 공급업체를 통합하면 구매 규모가 커지면서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도 있으니, 얼핏 생각하면 기존 회사의 구매 조직을 남겨둘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저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 구매업무를 하면서 여러 공급업체를 만나고, 쇼티지를 겪고,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보고, 때로는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품을 해외에서 가져오는 일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본사 단 11명을 남기는 안에 구매담당자가 두 명이나 포함된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2. ERP에는 없는 것들
가정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전혀 모르는 회사를 인수했고, 내일부터 그 회사의 구매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회사 자체를 인수했으니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ERP에서 어떤 원료와 포장재를 구매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공급업체별 구매 실적으로 Cost Analysis를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발주 데이터를 내려받아 분석하면 어느 시기에 어떤 품목을 얼마나 구매했는지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다음 주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발주하려고 하면 조금씩 이상한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 왜 이 원료는 한 업체에서만 구매하고 있는지?
- 똑같은 사양의 포장재인데 왜 두 업체에 물량을 나눠주고 있을까?
- A업체가 단가는 더 저렴한데 왜 굳이 B업체의 구매 비중을 더 높게 유지하고 있을까?
- 계약서에는 납기가 일주일이라고 적혀 있는데 과거 담당자는 왜 한 달 전부터 발주를 넣었을까?
ERP를 뒤져보면 숫자는 찾을 수 있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진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습니다.
평소에는 일주일이면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성수기에는 한 달 전에 발주를 하지 않으면 물량을 받을 수 없기도 하고, 서류상으로는 동일한 스펙의 제품인데 실제 생산 라인에 넣으면 유난히 트러블이 발생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가장 저렴한 업체보다 조금 비싼 업체를 유지하는 이유가 과거 몇 차례의 긴급 상황에 그 업체만 물량을 공급해 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3. 구매담당자에게 쌓이는 ‘공급망의 기억’
구매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구매담당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단순한 데이터라기보다는 맥락에 가까운 정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급업체 리스트는 파일로 전달할 수 있고, 품목별 단가와 계약 조건도 정리해서 넘길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발주 이력이나 월별 사용량도 ERP에서 내려받으면 그만입니다. 이런 정보들은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새로운 담당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지금 이렇게 구매하고 있는가’를 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지금의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지금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A업체를 먼저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겨 B업체를 추가했을 수도 있고,
- 수급 부족을 경험한 뒤 전략적으로 두 곳에 물량을 이원화했을 수도 있으며,
- 초기에는 더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다가 생산성 이슈 때문에 지금의 사양으로 변경했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공급망은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의사결정의 흔적입니다. 저는 구매담당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정보를 ‘공급망의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얼마에 사고 있는지는 ERP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사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결국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빨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은 그 공급망을 직접 운영해온 구매담당자입니다.
회사를 인수한다고 공급망까지 바로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인수를 검토하던 회사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의 지분이나 자산을 인수하는 날짜는 정할 수 있지만, 그날을 기준으로 기존 공급망의 모든 경험과 관계까지 새로운 조직으로 자동 이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수하는 회사에 훌륭한 구매 조직과 우수한 시스템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원료와 포장재를 조달해왔는지를 이해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장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인수 첫날에도 생산 계획은 있고, 그 생산 계획을 위해서는 원료와 포장재가 입고되어야 합니다. 공급업체와의 계약 관계도 이어져야 하고, 다음 달, 다다음 달에 필요한 물량도 미리 확보해야 합니다. 인수하는 회사의 구매담당자가 새로운 공급망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몇 달간 공장을 멈춰놓고 공부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존 공급망을 알고 있는 사람을 일정 기간 남겨두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고 있는지 아는 사람보다,
누구에게 사고 있는지 아는 사람보다,
왜 그렇게 사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말입니다.
약 200명 가운데 11명, 그리고 구매팀 4명 가운데 단 2명.
어쩌면 그 두 자리는 구매담당자 개인에게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 기존 회사의 공급망과 인수 이후의 새로운 조직을 연결하기 위해 남겨두는 일종의 연결고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그런데, 결국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회사를 뒤흔들었던 M&A는 결국 어떠한 이유로 무산되었습니다.
처음 M&A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인수가 성사될 것인지, 누가 고용승계가 될 것인지가 회사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지만, 막상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한 번 회사를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M&A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계속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회사 밖에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M&A가 무산됐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회사를 다니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M&A와는 상관없이 핵심 인력들은 회사를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용승계 대상으로 검토됐던 사람도 회사를 떠났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경쟁사로 갔고, 누군가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겼으며, 저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회사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가끔 만납니다. 이제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여전히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 예전 회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그때 진짜 인수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면 잠깐 각자의 경우를 떠올리다가, 대체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글쎄. 오래는 못 버텼겠지…”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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