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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재고의 역설 : 더 적게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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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재/재고
  • 연차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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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를 줄여라"는 오래된 구호입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재고가 많아서가 아니라, '필요한 곳엔 없고, 필요 없는 곳엔 쌓여 있어서'입니다. 지난 분기 결산 회의에서 CFO가 던진 질문 하나가 구매팀 전체를 긴장시켰습니다. “창고에 1년 넘게 쌓인 재고가 전체의 8%라는데, 이게 정상입니까?” 불용·부진재고 비중 5%가 구조적 문제의 신호탄이라는 업계 현황을 감안하면,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였습니다.

 

불용·부진재고는 단순히 창고 공간을 차지하는 것 이상입니다. 보관료, 보험료, 감가상각, 그리고 최종 폐기비용까지 동반하는 '숨은 출혈'입니다. 더 심각한 건, 이 재고들이 묶어둔 운전자본이 다른 전략적 투자 기회를 앗아간다는 점입니다. 재무제표와 운영 효율을 동시에 갉아먹는 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불용재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불용·부진재고의 이력서를 추적해보면,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첫 번째는 과신에서 시작합니다. 

신제품 런칭 시즌, 마케팅은 장밋빛 수요 예측을 내놓고, 구매는 품절을 두려워해 넉넉하게 발주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보다 차갑고, 수요는 빠르게 하향 안정화됩니다. 그 사이 발주된 물량은 이미 컨테이너에 실려 오는 중입니다. 

 

두 번째는 경직된 정책입니다. 

고정 발주량, 협상 불가능한 MOQ, 프로모션 대응을 위한 일회성 대량구매. 이벤트가 끝나도 발주 정책은 그대로 남아, 계속해서 과잉 재고를 양산합니다. 

 

세 번째는 보이지 않는 변동성입니다. 

공급 지연을 겪은 적이 있는 구매담당자는 안전재고를 과도하게 쌓습니다. 리드타임이 2주에서 4주로 늘어난 경험이 있다면, 6주치를 쌓아두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변동성이 일시적이었는지, 구조적인지 검증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생명주기 무시입니다. 

도입, 성장, 성숙, 쇠퇴. 모든 제품은 수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고 정책은 단 하나입니다. 성장기 제품과 쇠퇴기 제품에 동일한 안전재고 공식을 적용하고, 단종 시점이 다가오는데도 발주 시스템은 여전히 '주문 가능'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정재고’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적정재고를 '재고 최소화'와 혼동합니다. 하지만 적정재고의 본질은 '목표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면서 총비용을 최소화하는 균형점’입니다. 재고는 두 종류의 비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재고가 부족하면 품절비용(매출 손실, 고객 이탈, 긴급 발주)이 발생하고, 재고가 과잉이면 보유비용(보관료, 자본비용, 노후화)이 증가합니다.

 

안전재고는 이 균형을 잡는 핵심 레버입니다. 수요와 리드타임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며, 통상 서비스 수준과 리드타임 동안의 수요 표준편차에 비례해 설정됩니다. 리드타임 변동성이 크면 안전재고를 늘리되, 수요가 안정적이면 과감히 줄여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이 공식을 한 번 설정해두고 몇 년째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주문점은 "언제 주문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안전재고에 리드타임 동안의 평균 수요를 더한 값입니다. 이 지점을 정확히 설정하지 못하면, 너무 일찍 주문해 재고가 쌓이거나, 너무 늦게 주문해 품절이 발생합니다.

 

 

쌓이기 전에 막는다

 

불용재고와의 싸움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애초에 쌓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저회전, 고단가 품목은 발주 승인권을 상향 조정합니다. 구매 사유를 필수 입력하게 하고, MOQ 협상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게 만듭니다. 프로젝트성 발주나 프로모션성 대량 구매는 종료 시점의 잔여재고 처리 계획까지 함께 승인받는 구조로 설계합니다. 

 

한 글로벌 유통기업은 300만 원 이상의 신규 품목 발주 시 '예상 소진 시나리오'를 3개(베스트/노멀/워스트) 시뮬레이션해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워스트 케이스에서도 6개월 내 소진 가능성이 50% 이하면 발주를 보류합니다. 이 룰 하나로 불용·부진재고 비중을 2년간 3%p 감축했습니다.

 

 

S&OP를 재고 리스크의 조기경보 체계로 만들기

 

Sales & Operations Planning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회의가 아닙니다. 불용·부진재고 재고 현황, 예상 슬로우 무버 리스트, 단종 예정 품목의 재고 소진 계획까지 함께 논의하는 '재고 건강검진' 테이블이어야 합니다. 판매, 마케팅, 재무, 공급망이 한자리에 모여 "이번 분기 프로모션 후 예상 잔여재고는 얼마이고, 누가 책임지고 소진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 질문이 빠진 S&OP는 재고 폭탄의 타이머를 재설정하는 의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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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는 순간 포착한다

 

예방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쌓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빠르게 잡아내야 합니다. 재고 연령 분석을 루틴화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90일, 180일, 365일 이상 무출고 품목 비중을 매월 모니터링합니다. 재고 연령을 바탕으로 리스크 품목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6개월 사용량이 3개월 평균의 30% 미만인 품목"으로 정의하고, 해당 리스트를 자동으로 발행하여 공유하는 리포트 체계를 구축하면 관리 부진 재고 관리가 명료해집니다. 한 제조기업은 재고 연령 90일 초과 시 유관 부서에 알림을 발송하고, 180일 초과 시 해당 SKU의 발주를 시스템에서 자동 차단하는 룰을 적용했습니다. 담당자가 직접 사유를 입력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발주가 재개됩니다.

 

 

이미 쌓였다면 ? 손실 최소화 전략으로

 

예방과 조기 발견에 실패했다면, 이제 할 일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자, 회로 부품 등 불용·부진재고 중 번들 판매나 2차 시장 처분 등 판매를 검토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폐기는 마지막 선택지입니다. 폐기 결정 전에 반드시 원인 분석과 재발방지 조치를 문서화해야 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손실 최소화입니다.

 

 

KPI로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습니다

 

구매·공급관리의 재고 건강도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 관리가 필요합니다. ‘전체 재고 대비 불용/부진재고 비율, 재고회전율, 재고보유일수, 무출고 재고 비율 , 예측 정확도’를 KPI 지표로 설정하니 관리 측면에서 효과적인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KPI들이 단순 수치가 아니라 액션 트리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임계치를 초과하면 자동으로 원인 분석과 개선 조치가 요구되는 룰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이 지표들은 수요 계획, 상품 기획, 영업, 마케팅이 함께 관리해야 할 공동 KPI입니다. 각 부서가 자기 영역의 최적화만 추구하면, 그 틈새에서 불용재고가 자랍니다.영업, 마케팅, 상품기획팀과 공유되는 조직 간 연결 지표로 설정할 때, 비로소 불용재고 예방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명확한 발주 정책, 승인 거버넌스, KPI 체계, 그리고 조직 간 협업 프로세스가 얹혀야 비로소 효과가 납니다. 시스템은 렌즈를 제공하지만,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건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구매 전문가의 정체성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적정재고 관리는 단순한 재고 줄이기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서비스 수준, 리스크, 비용을 동시에 저울질하는 전략적 의사결정 영역입니다. 이제 구매·공급관리 전문가의 역할을 재정의할 때입니다. 우리는 "싼 가격에 많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적정량을 적정 시점에 확보해 총비용을 최소화하는 내부 자산운용자입니다. 창고에 쌓인 재고 하나하나가 회사의 현금이고, 그 현금이 어디서 새고 있는지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 누수를 막는 것, 그것이 우리가 조직에 제공하는 진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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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책갈피 | 문돈영 칼럼니스트

화학물질 제조, MRO/물류, E-commerce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의 구매 경험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 제조업에서 구매와 기획 업무를 담당하며 전략과 방향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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