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의 조직도를 살펴보면 ‘SCM(Supply Chain Management)’이라는 이름을 내건 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같은 SCM 팀이라도 회사마다 정의하는 역할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회사의 SCM팀은 물류 업무를 의미하고 어떤 곳은 생산 일정을 조율하며 또 어떤 곳은 그 중간 어디쯤의 업무를 수행하곤 합니다.
실무자로서 저는 SCM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단순히 하나의 ‘팀 단위’로 축소되어 불리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SCM은 특정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 제품이 세상에 태어나 사라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경영 철학이자 생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SCM의 진짜 의미,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제품은 ‘설계부터 폐기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는 ‘제품 수명 주기(Product Life Cycle)’가 존재합니다. 매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볼까요?
하나의 스마트폰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소비자가 원할 만한 기능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설계에는 제품의 사양뿐 만 아니라 필요한 부품과 원자재까지 상세히 정의되지요. 그다음에는 과거의 판매 실적과 최신 트렌드, 시장 상황을 분석해 이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 수요를 예측합니다. 출시일이 정해지면 비로소 생산 일정이 잡히고 이에 맞춰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는 계획이 수립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생산공장에서 완성된 스마트폰은 제조사에서 소비자에게 직행하지 않습니다. 대리점, 마트, 홈쇼핑, 백화점, 이커머스 플랫폼 등 수많은 도소매 유통업자를 거쳐야만 비로소 우리 손에 들어옵니다. 이후 우리는 스마트폰을 수리하며 사용하고 결국엔 폐기하거나 재활용하게 되지요.
이처럼 설계부터 폐기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공급망’이라고 하며, 이 전체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이 바로 ‘공급망 관리(SCM)’입니다. 보시다시피 SCM은 R&D, 조달, 생산, 유통, 유지보수, 폐기 등 수많은 분야가 융합된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라도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완벽하게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업은 전체 공급망 속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전후방의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어 나갑니다.
이 공급망을 우리 몸에 비유하자면, 앞서 말한 6가지 기능(R&D~폐기)은 각각의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뉴런)’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포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물류’는 정보를 전달하는 ‘시냅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 흐름 속에서 구매 업무를 담당하는 우리는 완제품 생산의 시작점인 ‘조달’이라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원가→품질→스피드→혁신, SCM의 화두는 누적된다
그렇다면 공급망 관리의 핵심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가 기업에게 무엇을 요구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산업화 이후 1960년대까지의 핵심은 ‘원가(Cost)’였습니다. 만들면 팔리던 공급자 우위의 시대였기에 ‘누가 더 싸게, 많이 만드는가’가 생존의 열쇠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며 경쟁이 치열해지자 시장의 주도권은 소비자로 넘어갔고 ‘품질(Quality)’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누가 더 고장 없이 잘 만드는가’를 놓고 일본 기업들의 TQM(전사적 품질경영)과 식스시그마 기법이 각광받았던 시기입니다. 2000년대에는 IT 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빨라졌습니다. 이때의 핵심은 ‘스피드(Speed)’였습니다. ‘고객이 원할 때 얼마나 빨리 줄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면서 재고를 줄이고 납기를 단축하는 JIT(Just In Time)와 SCM 개념이 경영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혁신(Innovation)’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싸고 좋고 빠른 것을 넘어 ‘누가 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기계를 넘어 iOS 생태계라는 경험을 파는 것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융합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경영학에는 ‘모래성 모델(Sandcone Model)’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모래성을 높이 쌓으려면 바닥이 넓고 단단해야 하듯 기업의 경쟁력도 누적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지금의 화두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핵심 역량이었던 원가, 품질, 스피드라는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져 있어야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SCM의 연결고리 속에서 ‘구매’는 어디에 서 있을까
지금 우리는 SCM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튼튼한 모래성을 쌓고 있을까요? 구매와 조달이라는 우리의 기본 역량을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는 경쟁우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더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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