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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보다 강력한 산업정책, 정부조달은 어떻게 반도체 산업을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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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한 칫솔 4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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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을 움직이고 있는 ‘조달’

관세와 규제가 글로벌 산업을 흔들고 있는 지금 지난달 칼럼에서는 그 이면에서 더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바로 조달 정책이 기업 전략을 바꾸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등 전략 산업에서 정부의 조달과 지원은 점점 더 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관세가 단기적인 충격이라면  조달은 기업의 투자 방향과 공급망 구조 자체를 바꾼다. 이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업이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는 ‘정부가 직접 사지 않아도’ 조달 산업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는 반도체를 직접 대량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르다. 미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조달 수요는 AI, 국방, 우주, 슈퍼컴퓨팅, 공공 데이터 인프라를 통해 반도체 시장을 강하게 견인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 구조의 중심에 있다. 미국 정부는 국방 분석, AI 연구, 공공 데이터 처리에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GPU는 사실상 표준처럼 활용된다. 즉, 정부의 조달 수요가 엔비디아를 통해 반도체 수요를 간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다.

 

이때 중요한 점은 엔비디아 혼자서 이 생태계를 완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첨단 공정, 안정적인 대량 생산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 여기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핵심 공급자로 연결된다.

 

 

OECD는 왜 공공조달을 ‘시장 형성 정책’이라 보는가?

이러한 구조는 OECD의 정책 분석과도 맞닿아 있다. OECD는 「Public Procurement for Innovation(PPI)」, 「Government at a Glance」 등의 보고서에서 공공조달을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닌 ‘수요 측면의 혁신 정책(demand-side innovation policy)’, 즉 시장 형성(market shaping) 정책으로 규정한다. 

 

OECD의 논지는 명확하다. 정부가 특정 기술과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이는 민간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주고 초기 수요를 만들어낸다. 불확실성이 큰 기술일수록 이 초기 수요는 기업의 투자 결정과 기술 상용화 속도를 좌우한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이 논리가 가장 극명하게 작동하는 분야다.

 

한국 기업에게 조달은 기회이자 조건이다. 미국이 동맹 중심 공급망을 유지하는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반도체 조달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달 기준이 동맹 우선을 넘어 미국 내 통제와 생산으로 강화될 경우 현지 투자 확대와 기술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된다. 이제 조달은 단순한 매출 기회가 아니다. 기업의 생산 거점, 기술 투자 그리고 공급망 설계 전반을 좌우하는 중장기 전략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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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환경이 바뀌면, 구매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구매 담당자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역할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와 일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구매가 가격과 납기 중심의 관리 업무였다면 이제 구매는 외부 정책 환경과 산업 구조 변화를 읽어내는 판단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첫째, 구매 담당자는 ‘최저가’를 찾는 사람에서 정책과 시장 흐름을 함께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어떤 산업을 키우고 어떤 공급망을 우선시하는지에 따라 최적의 구매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둘째, 구매는 단기 비용이 아니라 중장기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가격이 아니라 정책 변화 하나로 흔들릴 수 있다.

 

셋째, 구매 담당자는 혼자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안팎을 연결하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기술, 전략, ESG 부서와 함께 공급망을 설계하고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춰 구매 기준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조달이 산업을 설계하는 시대라면, 구매는 단순한 실행 기능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설계하는 사고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달 환경이 바뀌고 정부의 구매가 산업 전략이 되는 시대다. 이 변화는 정부나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구매를 바라보는 관점 하나, 의사결정 기준 하나가 앞으로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얼마에 살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이 선택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가? 조달이 산업을 바꾸는 시대, 구매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기업은 결국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관세는 무역을 흔들지만 조달은 산업을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의 최전선에 구매 담당자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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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한 칫솔 | 김세라 칼럼니스트

국내 유일 실무 경력직 구매전공 석사이자 항만업계를 거쳐 현재 IT업계까지 꿋꿋이 구매 12년 경력으로 끌어가고 있는 문송인
IT/항만 구매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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