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천항에서 물건 싣고 온 기사님이 계시는데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신다고 하네요.”
우리 회사는 물품을 받는 곳이 세 군데 있다. 이번 물건은 중국 상해항에서 인천항으로 입항한 건인데, 사전에 포워더(운송 주선인)에게 입고 창고를 알려줬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기사님 좀 바꿔주세요!”
“네, 잠시만요!”
“안녕하세요? 제가 물건 주문한 사람인데요. 회사 들어오실 때 바리게이트 지나오셨죠? 그 지점에서 정면을 보시면 큰 문이 두 개 있는데, 오른쪽 문 가까이 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릴 거예요. 그러면 2층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그 길 따라서 쭉 올라오시면 2층에 하역장이 있어요. 거기서 대기하고 계시면 출하팀에게 바로 하차해 달라고 할게요!”
통화를 하며 기사님이 연배가 있으시다는 걸 느꼈다. 전화를 끊고 곧장 2층 하역장으로 가보니, 다행히 물건 하차를 마친 뒤 인수증에 사인하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통화했던 구매팀 이XX 차장입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차장님?”
“네, 그래도 잘 하차하셨네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등 뒤에서 기사님이 말을 건네셨다.
“아이고, 참 친절하십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 되겠네요!”
‘친절’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한 신입 시절의 기억
'친절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올랐다. 약 15년 전 구매팀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업무는 이메일보다 팩스를 사용했고 메신저보다 전화 통화가 훨씬 많았다. 특히 전화 통화로 협상과 의사 결정을 하다 보니 수화기 너머 거래처들과 '기 싸움'을 빈번하게 하곤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임과 식사를 하며 전화 통화에 대한 부담과 걱정을 토로했다. 선임은 구매팀에서는 약하고 유해 보이면 안 된다며, 전화해서 쓸데없는 서론은 하지 말고 본론만 간단명료하게 얘기하고, 때로는 소리를 질러도 된다고 했다. 그래야 본인이 스트레스받지 않는다고…
그 시절 나의 업무 중 하나는 업체에 사급자재를 보내는 일이었다. 회사 앞 택배 지점에 가서 택배를 보내는 업무였는데, 그곳에는 여직원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앞서 내 선임이 얘기한 태도의 표본이었다. 목소리는 냉철했고 절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때론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분들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것 같던 또 다른 여직원이 있었는데, 상냥하고 조곤조곤 말하며 인사성이 밝았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오히려 그 직원을 힘들게 했다. 택배를 보내러 온 사람들은 때론 과도한 농담을 하거나, 미리 준비해야 할 서류를 준비하지 않고 그 여직원에게 맡기기 일쑤였다. 그 모습을 보며 그분도 결국 앞선 선임처럼 퉁명스럽고 냉철한 태도로 변하는 것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그 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업무에 익숙해 질수록 멀어진 친절함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입의 꼬리표를 떼야할 시점이 오자,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래처와 통화하며 내 할 말만 했다. 때론 맹수처럼, 때론 벽처럼 전화 통화를 이어갔다. 연차가 쌓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 부드럽게 대하려고 했어도 그 속에는 나만의 이득을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날카롭고 독선적으로 변하는 능구렁이 같은 구매인이 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주변의 많은 구매인들과 교류하고 선진 구매를 스터디하며, 진정한 구매 업무는 나를 위해 다른 이(거래처)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매 업무를 하며 가슴 깊이 새기는 문장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구매 직무는 다른 회사 영업사원들의 시선에서 회사의 얼굴이다.’
'물건의 가격을 깎으려 하지 말고, 깎는 방법을 알려주는 구매인이 되자.'
이 두 문장의 공통점은 '친절'이라는 덕목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친절함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 회사, 그리고 나와의 파트너십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친절’, 비록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큰 행복감을 느꼈고다시 한번 진정한 구매인이 되리라 다짐했다. 고도화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요즘, ‘친절한 구매인’이란 단어는 구매 직무에서 보람을 느끼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친절한 구매인이 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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